멀리 사는 자식에게 전화는 효도의 기준일까?
나는 종종 ‘전화 효도’의 스트레스에 대해 생각한다.
멀리 사는 자식에게 부모님의 기대치는 유난히 높다.
얼굴을 자주 못 보는 만큼, 전화라도 자주 하길 바라신다.
그 기대를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전화가 단순한 안부 확인이 아니라는 데 있다.
“왜 이제야 전화했냐?”
“다른 집 애들은 부모한테 매일 전화한다더라.”
“이럴 거면 차라리 전화하지 마라.”
내가 먼저 전화를 하면 괜찮지만, 받지 못하는 날이 생기면 이런 말들이 돌아온다.
그리고 결국 부모님이 서운하다고 표현하는 방식은 ‘화내기’가 된다.
그러다 보니 전화하는 게 부담이 될 때가 많다.
단순히 목소리를 듣고 안부를 묻고 싶은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잔소리를 덜 듣고 끊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내가 있다.
용돈을 보내도, 선물을 보내도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그게 관심과 애정의 표현일 테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강요로 느껴질 때가 많다.
전화 효도를 바라는 부모님의 심리
부모님이 전화받기를 원하는 건, 결국 자식과 가까이 있다는 걸 느끼고 싶어서일 거다.
그 마음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왜 그걸 자식이 먼저, 그리고 자식에게만 기대해야 하는 걸까?
자식은 매일 부모를 생각한다.
어디 아프신 건 아닌지, 잘 지내시는지, 뭘 드셨는지.
하지만 그 마음이 반드시 ‘전화’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자식이 부모를 그리워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문득 밥을 먹다가 부모님이 해주신 반찬이 떠오를 수도 있고,
TV에서 부모님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나오면 잠시 미소 지을 수도 있다.
그런데 부모님은 “전화가 없으면 관심이 없는 거다”라고 생각하신다.
자식이 바쁘고, 지쳐 있고, 때로는 연락할 마음의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는 건 고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부모님이 먼저 연락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부모님이야말로 ‘생각의 전화’를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왜 전화는 자식이 먼저 해야 할까?
전화해서 화내고, 서운하다고 말하고, 결국 상처만 주고 끊는데…
그런 전화를 누가 하고 싶을까?
부모님이 정말 자식과의 연결을 원하신다면,
자식이 ‘전화해야겠다’고 느끼게끔 만들어야 한다.
서운함과 잔소리 대신, 따뜻함과 위로를 주는 전화라면
자식이 먼저 걸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된다.
부모님이 먼저, 자식이 전화를 걸고 싶게 만드는 부모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자식도 성인이다.
부모에게 기대고 싶고, 위로받고 싶고, 때로는 부모가 먼저 연락해 주길 바란다.
자식은 언제나 부모를 생각하지만,
그 생각이 전화로 이어질지는 결국 부모님의 몫이기도 하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가 전화 한 통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더 따뜻하게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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